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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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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은 청풍(淸風), 자는 사중(士重)이며, 아버지는 판돈녕부사 김지묵(金持默)이다. 1774년(영조 50) 생원시에 합격하고 음보(蔭補)로 기용되어 녕릉(寧陵)참봉이 되었고, 1808년 여주목사에 제수되었으며, 1811년(순조 11) 총융사(摠戎使)에 임명되었다. 이어 금위대장·공조판서·지돈녕부사·도총관·한성부판윤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 왕실과 인척관계로 항상 언행에 조심하여 집안사람들에게 궁궐 안의 일을 말하지 않았다. 1826년 노령(老齡)으로 정헌대부(正憲大夫)에 승진하였다가 서만수(徐萬修)의 무고를 받아 외진 고을에 유폐된 지 수년 만에 죽고 말았다. 시호는 효헌(孝憲)이다.

□ 참고문헌 : 『정조실록』, 『순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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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일 2023.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