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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억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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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기의 문관으로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방로(邦老)이며, 김충정(金忠貞)의 아들이다. 일찍이 무과에 급제하고 제주판관·사복시판관 및 진산·순창·초산의 현감을 거쳐, 임진왜란이 일어나 왕이 평양으로 파천하자 방어사로서 허숙(許淑) 등과 함께 수군을 이끌고 대동강을 지켰다. 이때의 공으로 일시 안주목사에 발탁되었으나 허위 보고를 하고 군율을 어겼다는 대간의 탄핵을 받아 삭직되었다. 이후 계속 주사장(舟師將)으로 대동강을 지키다가 1593년(선조 26) 여주목사가 되었지만 직사(職事)를 잘못 처리하여 교체되었다. 1594년 만포진첨절제사(滿浦鎭僉節制使)가 되었으나 탐비(貪鄙)하다는 사간원의 탄핵으로 또 교체되었다. 고령진첨절제사(高嶺鎭僉節制使)를 거쳐 1597년 칠천량해전(漆川梁海戰)에서 전사한 이억기(李億祺)의 후임으로 전라우도수군절도사가 되었고 통제사 이순신을 따라 명량해전(鳴梁海戰)에서 많은 공을 세웠다. 그 후 밀양부사를 거쳐 1608년(광해군 원년) 경상좌병사가 되었다가 3년 후 제주목사에 제수되었다.

□ 참고문헌 : 『선조실록』, 『광해군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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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일 2023.12.21